[미즈] 나 이제 소풍 떠날래...

나 이제 소풍 떠날래...
등록일2014-12-17 18:20 조회수6,509 글자확대 글자축소

처음부터 내 일을 팽개치고 울산계모 사건에 뛰어들려고 했던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난 그 정도로 이타심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다.

모 학교에 진로캠프 계약을 맺고 돌아오던 날 전화를 받았고 , 생전 한번도 써보지 못한 탄원서란 것을 쓰려고 친모를 만나 자세한 사건내용을 들었을 무렵만해도 난 단지 한가지만 생각했다.

'이 사건을 알려야 한다'

그 전에 있었던 지향이 사건도 고모가 인터넷에 글을 올려 일파만파 여론이 형성되었으니, 울산계모 사건 역시 인터넷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뭘 어쩌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기가막힌 사건내용을 그냥 알려야 겠다는 생각만있었을 뿐이다.

일단은 '비참하게 자식을 잃은 친모'를 위로해야했기에 부지런히 죽을 사가지고 친모의 집에 찾아갔다. 물론 나 역시 친모가 이혼 후 단 한번도 아이를 찾지 않았던 것에 대한 의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친권이 없기에 아이 등본을 뗄 수 없었고 친부가 이사를 자주다니면서도 주소 이전도 안해놓았으며 아이 이름까지 개명을 했기에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는 말을 안믿을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이것때문에 내가 얼마나 삽질을 했던가!)

게다가 그 아이를 죽인 가해자가 가족끼리 친하게 지내던 친모의 절친이었다는 말에 황당함과 분노가 치솟았다. 아이의 친모는 아이의 장례식에 가서야 자신의 절친이 그동안 자신의 전남편과 동거를 하며 자신의 아이를 키우다가 갈비뼈 16개를 부러뜨려 죽인 사실을 알았으니,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었다. ( * 엄밀히 말하면 가해자 박씨는 서현의 친부와 혼인신고도 않은 동거녀였으나 언론에 워낙 울산계모 사건으로 알려지는 바람에 앞으로 울산계모로 칭함 *)

그때 울주경찰서 사건담당 형사가 출입기자들에게 이 사건을 알려주었고 각종 방송국에서 친모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지독하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소풍만은 보내달라고 애원하다가 결국 24개의 갈비뼈 중 16개가 부러져 죽은 조그마한 여자아이. 게다가 그 가해자는 친모의 절친.. 아침 방송에서 내보내기 얼마나 자극적인 내용인가 말이다.

망설이는 친모를 설득하였다.

알려야 한다. 널리 알려서 아이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네가 할 일이다 라면서..

그리고 친모는 모자이크, 음성 변조를 약속받고 촬영을 하였고, 나는 캠프 계약을 했기에 자료책도 만들어야 하고 강사섭외며 프로그램 구성을 해야해서 바빴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친모의 집에 머물렀다. 각 방송국에서 계속 친모의 집에 들이닥쳤고 친모는 몹시 불안해하면서 내게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을 하였던 것이다.

모자이크처리, 음성변조를 하였음에도 친모를 알고 있는 이들이 방송을 본 후 '혹시 00이 아니냐'고 물어왔지만 난 딱 잡아떼었다. 어쨌든 단 한번도 아이를 찾지 않았으니 가엾긴 하지만 친모 역시 죄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다만 이제라도 아이의 한을 풀어주고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청원하기 위해서는 사건 내용을 알리는 것이 친모가 그동안 아이를 찾지 못한 것에 대한 잘못을 씻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얘기는 친모에게 직접하였다)

잠시 짬을 내어 집에 돌아와 제안서를 작성하려 컴퓨터에 앉았지만 머릿속에는 소풍 보내달라고 울부짖는 작은 아이의 모습만이 뱅뱅 맴돌뿐 그 어떤 것도 할 수 가 없었다.

당시 B 대학,H 대학에서 의뢰한 제안서는 물론, 경남도내 각 중고등학교에 보낼 제안서를 단 한장도 만들어낼 수 없었다. 진로캠프가 확정된 근처 중학교에 방문하라는 소개까지 받았지만 찾아가보지도 못했다.

다른 방송국은 한 두 시간 정도 촬영을 하고 돌아갔는데, MBN '현장르포 특종세상'을 외주 제작하고 있는 IMTV의 김지웅 PD는 울산과 창원을 오가며 자세하게 취재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김지웅 PD에게 감사를 드린다.

김지웅 PD가 내게 첫번째 길을 열어주었고, 이 모든 일이 시작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다.

김지웅 PD가 사건 취재를 하면서 구영리 주민을 모아주었고, 나는 울산으로 달려갔다. 울산 구영리에서 만난 열 몇 명의 주민들 (주로 어머니들)은 눈물을 쏟으며 증언하였다

'서현이에게 너무 미안해요.. 그렇게 학대 당하는 줄을 전혀 몰랐어요... 너무 너무 미안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한 두 개가 아니었는데, 왜 그때는 이상하다고 의심조차 못해봤을까요.. 그때 의심만했었어도 서현이가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텐데.. 우리가 죄인이에요,,'

엄마들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가해자 박씨는 아주 싹싹하고 애교가 많은 성격으로 서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2학년 학부모 회장을 맡고 있었고, 서현이가 모든 과목에서 올백을 맞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으며 예의도 발랐기에 박씨가 아이를 정말 잘 키운다고 소문이 자자하여, 주변 사람 그 누구도 박씨가 '친엄마'가 아니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박씨가 '상해치사'로 입건되었을때 친하게 지내던 학부모들은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 아이가 이상하게 많이 말랐었어요.. 한 여름에도 긴 옷을 입고 다녀서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게 멍자국을 숨기는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 급식 시간만되면 아이가 식탐이 많다는 얘길 우리 애한테 전해들었긴 했는데..설마했지요'

가해자 박씨는 학부모 학년회장을 하기에 수시로 학교에 와서 아이의 일정 등을 체크했고 주변에는 '서현이가 거짓말을 잘하고 도벽이 있다'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고 한다.

보통의 엄마라면 아이가 비록 그런 짓을 해도 주변에 쉬쉬할터인데 그 부분은 조금 이상했지만 그래도 속상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증언이었다

박씨의 집에 놀러갔던 학부모들은 서현이 방에 아이다운 장난감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아이에게 용돈을 주면 버릇 나빠지고 기어오른다' 며 박씨가 용돈 조차 한번도 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떤 학부모가 아이가 이쁘다고 만원을 주자 '내가 엄마인데 니가 왜 돈을 주느냐'며 전화로 다그치며 무섭게 괴롭혀서 아이 교육 시키는데 자신이 방해를 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당황했다는 증언도 하였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는 영어과외 선생님이 아이 방 문을 닫고 수업을 하다가 멍든 모습을 보고 '어디 다쳤느냐' 고 묻자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박씨가 대신 아이가 넘어져 다쳤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박씨가 자신의 학대 사실이 발각될까봐 늘 방문 밖에서 엿듣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게 과외 선생님의 증언이다.

과외 선생님이 서현이에게 정수기에서 물 한잔 떠다 달라고 하자 '저는 물 못떠요' 하더라고 했다.

그러나 서현이는 학원에서는 정수기 물을 자주 떠 마셨다고 하였다. 서현이는 집에서 철저하게 통제당했고 냉장고 조차 마음대로 열지 못하도록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가해자 박씨와 친했던 한 사람은 울면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하였다.

서현이가 죽기 한달 전 쯤,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한 박씨는 서현이가 가정환경 조사서에 ' 부모님과 친하다' ' 행복하다' 고 적어놓은 것을 보고 상담을 마치고 돌아와 입꼬리를 올리고 비웃는 표정으로 '야시(여우)같은 게 거짓말도 잘하네. 지,, 안 행복할건데~~?' 라고 했다는 것이다 . 당시엔 '왜 저런 말을 하지?'라고 잠깐 생각은 했지만 의심해보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그 사람은 많이 울었다.

서현이는 박씨의 말에 '싫어요' 소리 한 번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는게 주변 엄마들의 증언이다

어느날 주변 엄마들과 근처 놀이공원에 간 박씨는 어른이 타는 바이킹 표를 딱 하나 끊어 와 또래보다 키가 작은 서현이를 바이킹 맨 끝자리에 태웠다고 한다.

아무도 타지 않은 바이킹 맨 뒷자리에 서현이만 달랑 타고 작동이 되었는데,

다른 엄마들이 어른도 무서워하는 바이킹 뒷자리에, 아무도 안타는데 왜 태우냐고 하자

원래 서현이가 이런 걸 좋아한다며 박씨가 웃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서현이는 무표정하게 로보트 처럼 바이킹에 앉아있었다고 한다.

박씨는 어린 서현이를 통제하며 가학적인 쾌감을 느끼는 여자였던가보았다

울산에서 이 사실을 들은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친모에게 전화로 울부짖었다.

'아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아이를 자세히 살펴보았으면 알 수도 있었는데, 어쩌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아동학대 사건은 여느 돌발적이거나 계획된 살인과는 다르다.

아동학대는 가족 내에 은폐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누군가가 신고를 해주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고 , 지속적인 학대가 진행되다가 폭력의 에스컬레이팅 현상이 일어나면서 마침내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 아동학대의 특징이다. (앞으로 칼럼에 계속 연재될 아동학대 사례를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보인다)

앞으로 쓰겠지만 서현이는 통제가 심화되어 거의 기계적으로 살아온 아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주변에서는 '말을 잘 듣는다' '예의가 바르다' '잘키웠다'라고 했으니, 지나치게 순종적인 아이들을 보면 한번 쯤 의심을 해봄 직도 하다.

이렇듯 아동학대는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어느정도 예방이 가능한 것이기에, 아이가 그 지경에 이르도록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던 주변사람들, 학교, 의사 등도 죄인일 수 밖에 없었다 .

나 역시 그랬다. 간혹 뉴스에 학대로 사망한 아이의 기사가 나오면 그 부모를 욕하고 하루 이틀 지나면 잊곤 했었다. 아이를 때리는 모습을 보면 '교양머리 없게 시리'하며 눈살 한번 찌푸리고 말뿐, 개입하지 않고 지나쳤던 나 역시 죄인이었다.

나는 그날 울면서 속으로 이렇게 소리쳤다

'미안하다 아가, 미안하다, 어른이 되어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어느 누구하나 관심 가져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나는 책상에 흩어졌던 제안서를 몽땅 끌어다 집어넣었다.

서현이에게 미안해서, 이제라도 그 아이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엄마' 라 불리며 살아온 , 내 할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땐 그것이 이렇게 길고 긴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