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이 달의 좋은 방송·나쁜 방송
<이 달의 좋은 방송> ◇MBC <어사 박문수> - 방송날짜 : 2002년 12월 9일∼2003년 2월 4일 오후 9시 55분 - 기획 장근수, 연출 정인, 극복 고동률 유진희
통쾌한 '개혁' 드라마 <어사 박문수>는 궁중암투 중심의 기존 사극에서 벗어나 부패척결과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을 우리의 전통인 해학과 풍자로 풀어냈다. 또한, 이 드라마는 생생한 묘사와 빠른 상황전개, 시청자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연기에 배철수씨의 감칠 맛 나는 해설까지 어우러져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신선함을 견지했다. 이에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는 MBC <어사 박문수>를 2003년 2월, 이 달의 좋은 방송으로 선정하였다.
드라마 속 시대정신은 '부패척결'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새로운 대통령에게 '부정부패 척결'과 '개혁'을 요구했다. 드라마 <어사 박문수>가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박문수는 개혁군주 영조와 함께 부정부패를 바로 잡으며 허물어져가는 조선왕조를 다시 한 번 개혁의 길로 이끌었던 인물로 묘사된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어사 박문수'의 활약을 보며 현실 정치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또한 '올바른 개혁'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지적한다.
주인공인 박문수(유준상 분)가 첫 회에서 영조에게 "당색이 정해진다 한들, 나라의 녹을 먹는 자는, 오로지 백성을 위하고자 하는 임금을 받을 것이며…소인 또한 오로지 백성을 위한 임금을 받들 뿐이옵니다"라며 '백성을 위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정치라는 것을 직설적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주제는 '박문수'가 각 고을을 돌며 사리사욕을 탐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탐관오리들을 징벌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어사일행이 "암행어사 출도야"를 외치며 해악을 일소하고 백성들의 울분을 씻어주는 대목에서 시청자들은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그 동안의 사극에서 '곁다리' 정도로 취급되었던 일반 백성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도 차별적이다. '이인좌의 난'을 토벌하는 과정에서도 이 드라마는 단순한 권력 쟁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반란에 동조했던 백성들의 안위가 주 관심사로 등장해 <어사 박문수>의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신선한 형식, 친근한 캐릭터 <어사 박문수>는 주제와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실험성을 가미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배철수씨의 나레이션이다. 드라마에서 배철수씨의 나레이션은 단순한 '흥alt거리' 이상이다. <어사 박문수>는 기존 사극에 비해 해설자의 역할을 늘리고 당시 역사적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배철수씨의 친근한 해설로 드라마의 내용은 물론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시대 상황까지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드라마의 구성도 치밀한 수사극 형식을 띠고 있어 시청자들로 하여금 매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였다.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새로움과 개성이 넘친다. 보통의 사극 캐릭터들과는 달리 주인공 박문수역의 유준상씨는 '어깨에 힘을 뺀' 사람냄새가 나는 연기를 했다. 박문수를 따라다니며 감초 노릇을 하는 칠복역의 이한위씨도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런 연기를 펼쳐 이제 사극도 체면과 권위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징치의 대상이 되는 탐관오리들의 연기와 대사 또한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시청자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던 건 아니었다. 16부작으로 기획된 <어사 박문수>는 대통령 선거와 연말 시상식 등과 맞물리며 1회을 앞당겨 종영되면서 뒤로 갈수록 전개가 엉성해졌으며 무협장면이나 대사처리에서도 미숙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어사 박문수>는 정형화된 사극의 개념을 탈피하려고 노력한 참신한 기획과 시도, 그리고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시청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전달한 드라마였다. 앞으로도 <어사 박문수>와 같이 선정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내용에서 벗어난 새로운 드라마가 지속되길 기대한다. (정리 최상윤 회원)
<이 달의 나쁜 방송> ◇SBS <야인시대> - 방송날짜 : 매주 월,화 오후 9시 55분 - 연출 장형일, 극복 이환경
역사에 대한 가공은 어느 선까지 용납될 수 있는가
SBS 월, 화 드라마 <야인시대>의 인기가 계속되고 있으나, 이와 함께 '역사왜곡'과 '폭력성'에 대한 비판도 강도를 더해 간다. 문제는 <야인시대>가 적극적으로 폭력을 미화하는 과정에서 내러티브의 설득력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특정 인물을 영웅화하기 위해 차용된 '드라마적 상상력'이 오히려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회는 <야인시대>를 2월, 이 달의 나쁜 방송으로 선정했다.
역사를 왜곡하는 <야인시대> 역사드라마에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주요한 논쟁거리다. 사회 일각에서는 <야인시대>가 역사적 진실과 사실의 경계 마저 허물고 있다고 평가한다. <야인시대>가 극의 재미를 위해 없던 사건을 만들어 내거나 과장하는 단순 사실의 변형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야인시대>가 기존 드라마와 다른 비판의 지점에 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 속의 김두한은 일제시대에는 종로일대를 장악한 조직폭력집단의 우두머리였고, 해방공간에서는 백주에 우익백색테러도 서슴없이 감행한 인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단순 폭력배가 '항일 민족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데올로기로 포장되어 '민족의 애국자', '독립 투사'로 탈바꿈되었다.
또한 친일명부에 올라있는 인촌 김성수씨가 민족주의자로 묘사되기도 한다. 역사의 왜곡은 단순히 특정 인물을 넘어서 구시대적인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단계까지 나가고 있다. 김두한이 어린 시절의 온갖 수난을 이겨내고 건달 세계의 상명하복과 의리를 배워가면서, 힘을 쥔 권력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전형적인 영웅신화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드라마는 난세에 태어난 한 명의 뛰어난 영웅이 시대의 무질서를 잡아가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그에게 모든 힘과 권력이 집중된다는 철저한 영웅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드라마의 관점은 시청자들의 의식을 과거로 후퇴시켜 절대권력에 대한 반동적 향수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의 회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야인시대>는 해방공간으로 극의 무대를 옮기면서, 시대착오적인 반공주의를 등장시키며 그 대립점의 좌파세력을 '악의 축'으로 모는 선악 이분법의 전형을 보여준다. 김두한을 필두로 한 우익 깡패들은 좌익세력을 서슴없이 '빨갱이'라고 부르고, 공산주의 세력이 김두한 암살음모를 꾸미는 장면을 부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야인시대>에서는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시선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데올로기가 양극화된 혼란한 정국 속에서 영웅의 적은 시대의 적으로 치환되며, 반공이데올로기가 화면을 채울 뿐이다.
위험수위 넘은 폭력의 미화 또한, <야인시대>의 빈약한 이야기를 채워주고 있는 폭력, 절대권력 등 권위에 대한 숭배와 미화작업 역시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 드라마가 생산하는 '폭력의 미화'는 극의 볼거리를 강화하는 한편 시청자들의 비판적 TV시청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화면은 온통 영웅들의 폭력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극적 장치로 넘쳐난다. 비장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근엄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으로 영웅들의 폭력은 단순 건달들의 그것과는 격이 다르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부여한다.
클로즈업된 영웅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면 시청자들은 절대 권력과 힘을 가진 자에 대한 경외심마저 갖게된다. 영웅의 폭력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한가지 더 지적할 부분은 <야인시대>에서 보여지는 왜곡된 여성상이다 . 흔히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역사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인물묘사는 정형화 된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사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수동적이고 감성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기생 설향과 설은 사랑에 맹목적이고 순종적인 여성들로 김두한에게 연정을 품고 주위를 맴도는 인물이다. 이 여성들은 한결같이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희생을 감수하며 남성들의 뒷바라지를 마다 않는다. 여성들의 존재와 역할은 극 전개 과정에서 영웅들의 남성성을 강화하는 장치인 것이다. 이러한 정형화된 인물묘사는 여성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작진의 반성과 성찰 필요 100회로 기획된 <야인시대>가 해방공간으로 시대를 옮겨 중반부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1부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역사왜곡과 폭력성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강도를 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정치드라마'로 바뀐 2부에서 시청률이 하락하자 있지도 않은 시라소니와 김두한의 결투장면을 삽입하려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아직까지도 맹목적인 레드 콤플렉스가 뿌리깊은 우리사회에서 이 드라마가 되살리는 섬뜩한 '마녀사냥'식의 정서다.
아직 역사에 대한 명확한 의식이 확립되지 못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제작진들의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야인시대>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제작진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만 무성할 뿐 변화가 없는 현실을 보면서 제작진의 의중이 사회여론보다는 시청률 올리기에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매번 외부의 지적이 일 때마다 제작진은 변화를 다짐해왔다. 하지만 어떠한 개선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제작진의 다짐이 비판을 면하기 위한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방송이 상업화로 치닫고 있는 시대지만 여전히 방송이 견지할 책임이 있다.
상업방송 역시 이에 자유롭지 못함은 자명하다. 제작진들은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사회, 문화적 영향력을 고민하고, 무엇이 진정 사랑 받는 드라마인지 거듭 자문해 보길 바란다. (정리 허지영 회원)
2003년 3월 21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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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주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우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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