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계모 첫 공판

등록일 2015-06-18 20:33

조회수 7,253

글자확대 글자축소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울산 계모의 첫 공판이 다가오자 하늘소풍카페에는 많은 회원들이 공판에 참석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대부분 힘없는 어린 아이를 그토록 잔인하게 구타해서 죽게 만든 여자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한 번 보고 싶다는 분노로 인한 것이었다.


 함안에 사는 김수현 회원이 우리 회원과 일반인을 구별하게 하자며 분홍색 스카프 백장을  자비로 만들어 가지고 왔다. 나와 회원들은 분홍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 온 회원들과 첫 인사를 나누고 법원 앞에서 콩나물 국밥으로 든든하게 요기를 한 후 법정으로 향했다.


 법정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서울의 이영미 회원은 남편, 딸과 함께 새벽 세시에 출발해서 왔다고 했다. 이영미 회원은 서울의 서명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한편, 서현이 49제에도 참석하여 분리수거 등 청소도 해주고 간 고마운 분이다.


 미리 대기하고 있는 회원들과 인사를 하고 호송버스가 들어오는 법정 마당으로 나가자 기자들이 대표가 누구냐고 물으며 인터뷰 요청을 했다. 나는 여러 매체의 인터뷰에 응하면서 항거불능의 어린 아이를 지속적으로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치사가 아닌 살인으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매스컴에 나서면 가족들이 걱정을 할 것이 뻔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알아야 하고 아동학대가 살인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려 했던 것이다.


 서현이 큰 아버지도 참석했다가 수십명의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장례식에서는 서현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던 큰아버지는 이후 서현이 친부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내 동생은 절대로 몰랐다고 합니다 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서현이 큰 아버지와 창원 회원들 간의 배꼽 빠지는 에피소드는 차후에 소개하겠다)

이날 나와 회원들에게 비난을 받은 큰아버지는 이후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서현의 친부 역시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음에도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큰 아버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멱살이라도 잡아끌고 왔어야죠!!! 뭐가 무서워서 못 오냐고!!! 잘못 없다매! 00에게 속았다매! 그럼 와야지!! 지 자식 죽인 년 공판엔 와야 할 것 아냐!"

 

 의경 백 여 명이 열을 맞춰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십 수 명의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의경이 간 길로 뛰어갔다.

저긴가 보다!’

내가 기자들 가는 방향으로 뛰자 회원들 수십명도 나를 따라 우르르  뛰었다

 

 법원 뒤 빈 공간에 경찰 백 명 가량이 양 옆으로 늘어서있고 의경 뒤로 카메라들이 한 곳을 향해 집중해 있었다.

이곳이 호송버스가 도착하는 곳이구나!’

울산계모가 내리는 모습을 보려고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자 경찰들이 제지했고, 기자들도 사진이 잘 찍힐 자리를 선점하느라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도무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당신들, 누굴 지키는 건데! 애 죽인 년을 영부인보다 더 철통 경호하는 이유가 뭔데? 안 때려! 그년 안 때려 죽일테니까 막지 말란 말이야!"

내가 악을 쓰자 회원들이 내 옆으로 와서 팔짱을 끼고 스크럼을 단단히 짰다. 그러나 호송버스가 들어오자마자 직업정신에 투철한 기자들이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왔고, 경찰들은 밀어내고 그 와중에 힘없는 엄마들인 우리는 앞뒤로 낑겨 구석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경찰과 기자, 우리가 아수라장이 되어 버스를 에워싼 바람에 버스 문이 열리지 않아서 울산계모는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기자 정신, 기자 정신하더니,, 그 기자정신을 눈앞에서 보게 되었다.

20대 초반의 신체 건장한 의경들이 기자들에게 떠밀려 추풍낙엽처럼 우리와 함께 밀려 나갔던 것이다....그 난리 북새통에 카메라 플래시가 펑펑 터지고 있었다. 울산계모가 버스에서 내려 문 안으로 사라지는 단 2-3초 사이에 기자들이 그 모습을 잡아낸 것이다. 대단한 기자들...

 



 

 몸싸움을 하느라 산발이 되어  다시 법정으로 뛰어들어갔다. 법정에는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셋 모두 여자였다. 정계선 부장판사는 법정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더니 차분하게 유족에게 조의를 표한 후,변호사가 변호를 하는 것은 그들의 본분이니 비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가 울산계모의 제부와 통화한 후 사선변호사가 사임을 했고 국선 변호인이 선임되었다. 우리 카페에서 변호사의 난이 일어난 것을 판사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어서 대략 170cm 는 되어 보이는 울산 계모가 겨자 색 죄수복을 입고 들어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커트머리에 안경을 끼고 있었고 통통한 체구였다. 저 우람한 몸으로 조그만 서현이를  팔로 다리로 때려죽였단 말인가!

울산계모가 들어서자 방청석 여기저기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법정이 소란스러워지자 판사가 울산계모를 되돌려 보냈다. 그리고 자꾸 소란스럽게 하면 비공개 재판을 할 거라고 말했다. 그제야 법정이 조용해지자 울산계모가 다시 나왔다

 

 울산계모 사건은 김형준 부장검사를 비롯해 네 분의 검사님들이  진행하였는데, 공판 검사는 박양호 검사님이었다. 드라마에선 검사들이 법복을 입고 범죄자들을 향해 추상같이 소리치며 죄명을 낱낱이 까발리는데, 한결같이 미남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검사님에 대한 로망이 좀 있었나보다... 이후 진행된 재판을 보며 우리 회원들은 박양호 검사앓이를 하게 되었다.




 



피고는 피해자의 대퇴부 뼈를 부러뜨리고 끓는 물을 부어 심재성 2도 화상을 입히고 ...” 박양호 검사가 기소내용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법정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울산계모는 모든 기소내용에 대해 순순히 라고 대답하였으나 살인의 고의성 부분에서는 아니라고 답했다. 꼭 쥔 주먹이 덜덜 떨렸다. ‘고의가 아니라고? 갈비뼈 16개가 부러질때까지 때린 게 고의가 아니라고?’


 첫 공판은 기소내용만 확인하고 금방 끝났다.

울산계모가 여경의 부축을 받으며 나가는 순간, 내 입에서 폭풍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00! 00!”

너무 억하니까 다른 말이 하나도 안나오고 오로지 울산계모의 이름만 터져나왔다.

할말이 너무 많은데, 욕해줄 것도 너무 많은데, 그 많은 말들이 서로 뒤엉켜 버리고 이름만 목이 터져라 나오고 말았다. 다른 회원들도 울산계모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냅다 뛰었다

그냥 보낼 순 없다

뭘 어쩌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저 여자를 이렇게 순순히 보내 줄 수는 없다는 그 하나만이 내 머리를 지배했다. 법정 밖으로 나가자 호송버스가 시동을 걸고 후진을 하는 참이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행동했다. 일단 버스 앞을 가로막았다.

경찰들이 날 조심스럽게 끌어냈다. 난 두 다리를 딱 벌리고 두 팔을 벌려 버스 앞에 버티고 섰다. 그 사이 달려나온 회원들 수십명이 버스를 에워싸고 일제히 버스를 두들기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카메라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촬영을 했다. 난 버스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에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보지 못했다. 다만 쾅쾅 거리고 악쓰고 우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경찰이 날 잡아끌고 버스는 서서히 움직이며 나를 밀어냈다.

 난 속으로 회원들을 원망했다.

왜 내 옆에 아무도 오지 않는거야!’

우리 회원들은 버스를 두들기고 악을 쓰느라 정작 앞에서 내가 버스에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전혀 하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의리하고는!!!


 결국 내가 경찰 두 명에 의해 끌려나오자 버스는 속력을 냈고 줄행랑을 쳤다

나는 버스를 따라 달리며 악을 썼다. ‘ 00!!! 이 병신아!!!!!’

이 때까지만 해도 내가 욕다운 욕을 못할 때였다. 이날 버스 꽁무니에 대고 병신아 소리를 어찌나 질렀던지 목이 쉬어버렸다.

 

버스가 떠난 후 목에 분홍 스카프를 맨 회원들이 나를 둘러쌌다 (남자회원들도 분홍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는.....)

 

나는 법정 마당에서 회원들에게 절규하듯 소리쳤다.

우리가 아동특례법을 반드시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달라고, 안되면 국회로 쳐들어가서 뒹굴더라도 꼭 통과시키자고. 더 이상 모진 학대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없게 하자고..

회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저는 믿습니다. 서로 일면식도 없이 온라인에서 모인 우리지만, 반드시 특례법을 통과 시키고 아동학대자들을 처단할 것이라고,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우리 아이들을 지켜줄 것입니다.

이 나라를 지켜온 이들은 위정자도 아니고 그럴싸한 조직도 아닌, 우리처럼 이름없는 국민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나는 이틀간 몸살을 앓았고 일주일쯤 후에야 목소리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기운차게 특례법 통과를 위한 행동개시에 들어갔고 마침내 법사위로부터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담기 인쇄 목록 
로그인 후 덧글을 남겨주세요
  1. 손주연 2015-06-21 17:15     답글 | 공감(0)
    정말 마음아픈 글이네요
    저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많은 정말 부끄럽네요
    고생많으셨어요




미즈 강의실은 할인 중

DreamMiz

  • 상호명:(주)드림미즈 대표이사:천선아 개인정보관리책임:조양래 사업자 등록번호:101-81-54206
  • 통신판매신고:제 2009-서울중구-0544호 기술혁신기업 이노비즈 인증:제8012-1870호 벤처 인증:제200814774호
  • 지식·인력개발사업관련평생교육시설:제 지식-118호 직업정보제공사업:서울청 제2002-9호
  • 유료직업소개사업:중구-유-2010-6호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독서당로 46, 한남아이파크 B101호, B102호 (우) 04410
  • 고객지원:02-3668-9700 FAX:02-3668-9799 E-mail:master@dreammiz.com
  • Copyright (c) 2000-2017 (주)드림미즈All rights reserved

K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