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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쟁쟁 울리는 오뉴월 염천 매미소리 사이로 끊어질듯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선산댁 작은방에서 흘러나왔다.
'우짜고 있노?'
마당에 덕석을 깔고 앉아 삼을 삼던 시아버지(이하 열이 양반) 가 땀범벅이 되어 작은방에서 나온 시어머니( 이하 선산댁)에게 물었다.
'아이고 죽으마 어짜꼬~아무래도 죽지 싶심니더'
선산댁은 아장아장 안겨드는 막내 아들을 떼어내며 눈물을 닦았다.
'씰데없는 소리 마라'
짐짓 아내를 나무랬지만 삼을 비비는 열이 양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선산댁 뒤를 따라 나오던 분님이 엄마가 저고리를 할랑거리며 '군에 전보치야 안되겠습니꺼? , 인자는 숨만 붙어있는 형국이라예'하고 말을 보탰다.
벌써 여드레 째다.
갑님이에게 산기가 있어서 동네 산파인 분님이 엄마를 불러서 산실인 작은방에 모셔두고 미역 삶아 국끓여넣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으나 갑님이는 몸만 틀어댈 뿐, 여드레를 넘기도록 좀처럼 출산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이틀간은 젊은 기운을 악악 써댔으나 사흘째부터는 축 늘어져 간간 헛심만 올리다가 거의 산송장이 되었던 것이다.
개천 건너 갑님이 친정은 언제 큰 딸 숨넘어갔다는 소식이 넘어올지 몰라 올망졸망 어린 다섯 동생들조차 숨소리를 죽이고 있던 참이었다.
애 낳다가 산모가 죽는 일이 드물지 않던 시절이었다.
갑님이의 신음소리조차 잦아들었다. 신음도 못내어 겨우 숨만 헐떡이며 죽음만 기다리는 상태였다.
가망이 없다 여긴 동네 어른들은 장례절차를 상의하러 모여들었고, 개울 건너에서는 무동댁의 울음소리가 가늘게 흘러나왔다.
열이 양반은 한숨을 쉬며 유씨네 도영이를 불러 읍내로 나가 갑님이 신랑이 입대한 대구 사령부에 '처 위독 급래' 라는 전보를 치라고 지시하였다.
밤 늦은 선산댁 마당에는 불이 훤하였다.
큰 방에는 동네 아낙 몇이 모여앉아 눈물을 닦으며 미리 수의를 짓고 사랑방에는 동네 남정네 몇이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이제나 저제나 작은 방에서 들려올 사망선고를 기다리는 와중에 ' 인명은 제천 아입니꺼, 지 명이 그거 밖에 안되는걸 우짤끼고'하며 열이 양반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때, 전보치러 갔던 도영이가 느지막히 돌아오는 뒤로 읍내 민약국네 민약사가 왕진가방을 들고 따라들어왔다.
민약사는 분님이 엄마를 눈짓으로 부르며 두말 없이 산실로 들어갔다.
'민약사가 와 젊으이 방으로 드가노?'
시할머니는 어르던 막내손자를 급하게 들쳐업고 건너방에서 내려왔다.
산실에는 열아홉살 갑님이가 숨을 쉴 기력도 없이 산송장이 되어 늘어져 있었다
민약사는 왕진가방에서 커다란 주사를 꺼내 갑님이 치마를 걷어내고 허벅지에 주사바늘을 찔러넣었다.
순간,
거의 송장이 되어 누워있던 갑님이가 자신도 모르게 힘을 불끈 주더니 갑님이는 위로 쑥 올라가고 아래로 갓난 애기가 쑥 떨어져 내려왔다.
'엄마야 우짜고 아들이네!!!'
분님이 엄마의 비명소리에 수의를 짓던 아낙들이 부지불식간에 뛰쳐나오고 선산댁도 작은방으로 달려들어갔다.
(훗날 갑님이는 그 주사가 혹시 분만 유도제는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말하였다)
사랑방에서는 남정네들이 차마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젊으이는 ? 살았나?' 하는 소리만 연신 해댔다.
갑님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장손을 낳았다는 소리에 침울하던 사랑방의 막걸리 잔은 기운차게 날아다녔고 첫 손자를 본 열이 양반은 그날 축하주를 받느라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뒷처리를 분님이 엄마에게 맡기고 방을 나오는 민약사 뒤로 치마가 허리까지 올라간 채 하체가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 잃은 갑님이가 보였다.
'뭔 일이고?' 묻는 시할머니에게
' 귀신이 곡할노릇 아입니꺼? 민약사 주사 한방에 아가 나왔어예!' 하고 분님이 엄마가 벙글벙글 웃으며 답하고는 방문을 닫았다.
'뭐이라? 젊은 지집이 사나 보는 앞에서 가랭이를 벌리고 아를 낳았단 말이가?'
아닌 밤중에 곡소리가 선산댁네 담을 넘었다.
개천 건너 갑님이네 친정 엄마는 드디어 큰 딸이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고 여겨 머리를 풀고 곡을 했다.
선잠이 들었던 이웃집에 호롱불이 켜졌다
'아이고 우짜꼬, 결국 갑님이가 죽었는가배'
이웃들은 고무신을 끌고 선산댁 집으로 모여들었다.
곡소리의 진원지는 선산댁 마당이었다.
허연 머리를 풀어헤친 갑님이 시할머니가 '아이고 조상부끄러바라, 아이고 동네 부끄러바라. 어째 젊은 지집이 사나 앞에서 가랭이를 벌리노~' 하며 땅을 치고 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님이 빠마 사건으로 시할머니와 사이가 틀어졌던 선산댁은 분주하게 부엌과 산실을 오가며 곡을 하는 자신의 시어머니한테 '그라모 젊으이가 죽었어야 됐습니꺼! 떡뚜꺼비 같은 아들 낳아놨는데, 와 저라시노, 노망이가' 하며 용감하게 핀잔을 주었다.
' 또 니년이 일을 꾸밌나? 니년이 사나를 불러 젊은 지집 가랭이 벌리게 했나? 두년 다 나가라! 이 년들! 이 집안 말아먹을 년들!'
갑님이 시할머니는 아장아장 안겨드는 막내 손자 (갑님이 막내 시동생) 도 뿌리치며 악과 곡을 같이 했다.
평소 하루 열마디도 없고 어무이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던 열이 양반이 첫손자 축하주에 취해서 비틀거리면서도
곡을 하는 시할머니(자신의 어머니)를 일으키려 애를 썼다.
술기운이었을까.
첫 손주를 본 45세의 열이양반은 63세의 시할머니에게 아주 아주 용감하게 말했다.
'어무이한테 돈을 달라캅니까 뭐를 하라캅니까, 와 이래 동네 우세를 합니까'
민약사는 아들이라고 500환을 받아갔다는 것이다. (딸은 300환 받았다나... )
젊은 지집이 신랑 군대 간 틈에 남자 보는 앞에서 가랭이를 벌리고 애를 낳은 천하에 있을 수 없는 망측한 일을 저질렀음에도 도대체 이노무 집구석에 시할머니 편은 아무도 없었다.
밤새 외롭게 곡을 하던 시할머니는 날이 밝기 무섭게 보따리를 싸서 새터재 너머 둘째 아들 집으로 가출을 감행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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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언니